테샛공부방

일자리 나누기의 시장원리

2009. 04. 03
[이승훈 교수의 경제학 멘토링]
일자리 나누기의 시장원리

임금의 하방경직성과 취업난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실업자 숫자가 100만명을 바라보는 가운데 일자리 창출이 나라 경제의 최우선 과제로 되었다. 대책으로 거론되는 것 중 하나가 일자리 나누기이다. 열 사람의 일자리를 열 한 사람이 나누면 일자리는 10% 늘어난다는 것이다. 일감이 늘지 않는 상태에서 일자리를 나누면 각자 일의 양이 줄어드는 만큼 임금도 낮아진다. 그러나 시간당 단위 임금은 그대로이기 때문에 기업의 노동 수요,즉 일거리는 늘어나지 않는다.

채용 공고가 나는 곳마다 구직자가 장사진을 치는 까닭은 현재의 임금에서 노동시장이 초과 공급 상태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이 수요 · 공급의 법칙에 따라서 작동한다면 임금이 하락하여야 한다. 사실 1930년 대공황기에 시장주의자들은 조만간 임금이 하락하여 실업 문제가 자연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였다. 이에 대하여 중 · 단기적으로 임금은 하락하지 않으므로 정부 개입으로 경기를 진작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경제학자가 케인스다. 케인스는 임금의 하방 경직성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므로 시장 법칙의 작동만을 기다린다면 불황은 계속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는다고 경고하였다.

임금의 하방 경직성은 취업자들이 임금 인하를 거부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새 사람을 쓰면 직무에 적응하도록 훈련시키는 데 적지 않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취업자들의 임금은 구직자들이 수용하는 수준보다 어느 정도 높게 마련이다.

그러나 구직자들이 훨씬 더 낮은 임금조차 좋다고 나선다 해도 사용자가 고임금을 고집하는 취업자들을 해고할 수 없다면 임금은 낮아질 수 없다. 강력한 노조와 고용보호법제가 가세하면 임금 하방 경직성은 더욱 강화된다. 일자리 나누기에서는 근로자 개인의 임금 총액이 감소한다. 그러나 시간당 임금은 변함 없는 만큼 임금의 하방 경직성은 그대로 유지된다.

하방 경직적 임금은 일거리를 구직자들이 원하는 것보다 더 적은 수준으로 묶는다. 일자리 나누기는 모자라는 일거리를 늘리지 않으므로 정상적 일자리 창출 정책이 아니다. 임금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일거리를 늘리려면 투자가 늘거나 정부가 재정 지출을 확대하여 공공 사업을 벌여야 한다. 불황기에는 민간 투자가 부진하므로 결국 공공 사업을 확대하는 길밖에 없다. 그러나 공공 사업은 흔히 경제적 효율성에 반하는 형태로 펼쳐지는 만큼 반드시 부작용이 따른다.

최근 정부는 공공 부문 신규 취업자들의 임금을 낮춰서 직원들을 뽑았다. 임금을 낮추면 더 많은 일거리가 생겨나므로 일자리 나누기보다는 더 나은 정책이라 하겠다.

현재의 취업난을 잘 아는 취업자들은 낮은 임금도 수용할 것이다. 이 기회를 이용하여 아예 임금 하방경직성 자체를 무너뜨려 볼 만도 하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취업자 임금 삭감만으로는 안 된다. 임원들 연봉부터 삭감하고 시작했어야 한다. 그렇게 했어도 어찌될지 모르는 판인데 신규 취업자들에게만 양보를 강요한다면 취업 이후 이들이 어떻게 나올지는 불 보듯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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