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경제 77> 투자일임업 논란
2013. 10. 21
투자일임업은 고객 위임을 받아 금융사가 투자를 전부 대신해주는 금융업
◆ 은행 투자일임업 허용 논란
370조원대 투자일임업 시장을 놓고 은행과 증권사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은행측에선 국내 자산관리시장 발전을 위해 은행에 투자일임업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증권사들은 은행의 투자일임업 허용은 금융산업과 금융소비자의 관점에서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 10월 8일 한국경제신문
☞ 은행과 증권사간에 투자일임업을 둘러싼 한판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등만 할 수 있는 투자일임업을 은행에도 허용할지가 이슈다. 은행들은 금융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는 까닭에 은행들도 투자일임업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증권사 등은 이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처럼 투자일임업 허용이 은행과 증권사간 첨예한 이슈로 떠오른 건 금융사의 수익이 최근 별로 좋지 않다는 게 배경이 되고 있다.
투자일임업은 금융회사가 고객으로부터 어디에 어떻게 투자할지를 일괄 위임받아 투자자 개별 계좌별로 대신 자산을 운용해주는 금융업을 말한다. 자본시장법은 자본시장 관련 금융업을 △투자매매업 △투자중개업 △집합투자업 △신탁업 △투자일임업 △투자자문업 등 모두 6개로 구분하고 있다. 법에서 투자일임업은 ‘투자자로부터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투자판단의 전부 또는 일부를 일임받아 투자자별로 구분하여 금융투자상품을 취득·처분, 그밖의 방법으로 운용하는 것을 영업으로 하는 것’으로 규정된다. 투자를 일임하려면 고객은 금융사에 종합자산관리계좌인 ‘일임형 랩어카운트’를 개설해야 한다. 투자일임업자(금융사)는 대신 일정한 수수료를 받는다.
투자일임업과 혼동하기 쉬운 금융업에 투자자문업과 랩어카운트가 있다. 투자자문업은 말 그대로 투자에 대해 조언을 해주는 것이다. 금융사가 직접 고객 자산을 운용해주는 투자일임업과 다르다. 자본시장법에는 투자자문업을 ‘금융투자상품의 가치 또는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투자판단에 관한 자문에 응하는 것을 영업으로 하는 것’으로 돼 있다. 랩어카운트는 증권사가 투자자에게 투자중개와 투자일임의 결합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증권계좌를 지칭하는 용어로 법령에는 명시적 규정이 없다.
투자일임업을 할 수 있는 금융사는 자본시장법상의 금융투자회사와 종금업법상의 종금사다. 증권사 자산운용사 투자자문사 선물회사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은행은 투자일임업은 할 수 없고 투자자문업만 허용돼 있다.
투자일임업 시장 규모는 지난 6월말 현재 367조원이다. 2008년 164조4000억원에서 연평균 19.5%의 높은 성장세를 보여왔다. 금융사별로는 6월말 현재 자산운용사가 288조7000억원, 투자자문사ㆍ증권사ㆍ선물사가 78조3000억원이다. 2008년 이후 자산운용사의 연평균 성장률은 16.5%인 반면 자문사, 증권사, 선물사는 36.4%에 달한다. 이에 따라 자문사, 증권사, 선물사의 시장점유율은 2008년 11.8%에서 6월말 현재 21.3%로 두 배 가량 높아졌다.
은행권의 투자일임업 진출 허용 논란은 금융위원회가 금융산업 비전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지난 7월과 9월 금융위원회와 은행권 PB(프라이빗 뱅킹) 담당 실무자들간 비공식 간담회에서 은행권은 투자일임업 진출 허용을 강하게 요청했다.
은행권은 고객들에 투자자문만 해주고 실질적 투자는 증권사 등을 통하게 되면 진정한 맞춤형 자산관리 서비스가 어렵다며 투자일임업이 허용되면 고객의 거래 편의가 훨씬 높아질 것이란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 저금리 지속으로 예금과 대출 이자간 차이(예대마진)가 줄고 있어 새로운 수익원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의 황원경 선임연구위원은 “투자일임업이 허용되면 은행은 랩어카운트와 같은 일임상품을 개발해 운용과 판매를 직접 할 수 있게 된다”며 “고객의 투자편의성을 상당히 올릴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증권사 등은 현재도 300여개사가 투자일임업에 참여하고 있는 데 은행권마저 뛰어든다면 과당경쟁이 우려되고 불완전 판매 등 투자자 보호도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자본시장연구원의 송홍선 연구위원은 “은행에 투자일임업을 허용해준다는 것은 결국 은행도 자산운용 시장에 끼어들도록 허용하겠다는 것”이라며 “지금도 주요 은행들이 자회사를 통해 투자일임업을 하고 있는데 이를 은행에 직접 겸영(兼營)까지 허용해주는 건 자본시장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으로도 금융업 겸업보다는 분리로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며 “글로벌 금융감독 흐름에도 맞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은행의 투자일임업 허용 문제는 2007년과 2010년에도 불거졌는데 2010년 7월 은행법 시행령 개정 당시 증권사 등의 반발로 은행들에 투자자문업을 허용하되 투자일임업은 불허하는 쪽으로 결정됐었다.
금융산업은 기본적으로 라이선스업이다. 정부의 허가없이는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만큼 금융산업이 국민생활에 막강한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1997년 외환위기 이전 정부가 지방은행과 투자신탁회사 설립을 무더기로 허용했는데 이후 이들 금융사가 대거 부실화돼 나라경제에 큰 짐이 된 적이 있다. 금융사 신설을 허용하고 새로운 업무를 허가해주는 건 상당히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