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화폐통합, 어떻게 추진할까
2011. 07. 28[이승훈 교수의 경제학 멘토링]
남·북한 화폐통합, 어떻게 추진할까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남북통일은 남북 간 경제통합을 요구한다. 화폐통합도 당연히 불가피한데 남북 간 화폐통합은 지금 유로존의 재정위기보다 훨씬 더 복잡한 문제들을 야기할 것이다. 통일독일은 미숙한 경제통합과 화폐통합 정책의 후유증 때문에 지금까지도 엄청난 규모의 통일 비용에 시달리고 있다.
독일은 통일 이후 동독 경제의 시장경제화를 추진하면서 서둘러 화폐통합을 시행하였다. 동독 마르크는 1 대 1 비율로 서독 마르크와 교환됐고,임금과 연금계약도 그 금액만큼의 서독 마르크화로 인정됐다. 그런데 그 이후 동독 경제는 산업생산이 줄기 시작해 통합 1년 뒤에는 30% 수준으로 폭락했고,실업률은 7.2%에서 25%로 급증했다. 무너진 동독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통일독일은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4~5%를 비용으로 지출해 오고 있다. 그 누계가 1조5000억유로로,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2300조원에 이른다.
공산권 경제가 시장경제를 수용하는 체제이행 단계에 진입하면 시장 수요가 외면하는 산업과 기업들의 무더기 도태가 불가피하다. 그러므로 이행 초기 생산 및 고용 감소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일반 이행경제의 경우 생산 감소의 폭이 최대 20% 내외에 그쳤는데 왜 유독 동독 경제만 붕괴 수준으로 추락했을까.
이행경제의 화폐는 태환이 자유롭지 못하므로 그 화폐로는 그 나라 제품밖에 구입하지 못한다. 즉 이행경제의 생산 부문은 품질 나쁜 제품을 생산하더라도 그만큼의 내수를 보장받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서독 마르크화를 화폐로 쓰게 된 동독 소비자들은 품질 좋은 서독 제품을 마음대로 구입할 수 있게 됐다. 동독 경제의 생산 부문이 붕괴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동독 제품의 불량한 품질이 모든 전통적 고객들에게 일시에 외면당했기 때문이다.
많은 북한 주민의 일자리는 국영공장이나 장마당 상품을 생산하는 영세 민영공장이다. 이들 공장 제품의 품질은 대부분 수출이 불가능할 정도로 조악하지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북한 주민들은 이 제품을 구입해 사용한다. 만약 우리가 독일처럼 화폐통합을 서두른다면 북한 주민들의 대부분은 남한 제품을 구입하려 들 것이고,순식간에 시장을 잃은 북한 경제의 생산 부문은 동독 경제보다 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공장이 문을 닫고 실업자들이 쏟아져 나오면 통일은 축복 아닌 저주로 변할 것이다.
통일 이후 북한의 생산 부문이 구조개편 과정을 순조롭게 겪어내고 남한의 시장경제에 당당히 참여하도록 만들려면 우선 그 기간에 시장을 보장해 주는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무엇보다도 환전이 통제된 채 북한에서만 유통될 제2한국은행권을 만들어 상당 기간 사용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조급한 남북 화폐 통합은 절대로 안 된다.
이승훈 < 서울대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