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경제 95> 개인신용등급
2014. 03. 10
개인신용등급은 자신의 신용도를 알려주는 거울
… 100만명의 중산층, 금융위기 이후 저신용층으로 추락
◆경기침체와 개인신용등급
금융위기 이후 중신용층(개인신용평가등급 5∼6등급) 대출자 4명 가운데 1명 이상이 저신용층(7∼10등급)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은 4일 ‘금융위기 이후 저신용 가계차주 현황’ 보고서에서 2013년 6월말 금융권 대출이 있는 차주(借主) 50만명의 신용등급 변화를 추적한 결과 이렇게 분석됐다고 밝혔다. - 2월 5일 한국경제신문
☞ 신용(信用)이란 일반적으로 사람의 언행이나 약속이 지켜질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믿음을 뜻한다. 그런데 경제생활에서 신용은 장래의 어느 시점에 그 대가를 치를 것을 약속하고 현재의 가치를 얻을 수 있는 능력, 즉 현금을 갖고 있지 않아도 물건을 사고 돈을 빌리거나 기타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신용등급은 신용의 수준 다시 말해 돈을 빌려줄 때 얼마만큼 신뢰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채권의 원금과 이자를 약정대로 상환할 가능성을 표시하는 부호다. 따라서 신용등급 판단에는 약속한 대로 빚을 갚을 능력이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신용등급은 신용평가를 전문으로 하는 신용평가회사나 크레디트 뷰로(Credit Bureau, 개인신용정보회사)가 한다. 신용평가 대상은 △국가 △기업 △개인이 모두 포함된다. 신용등급을 매기는 구체적인 평가요소로는 기업의 경우 경영관리위험, 산업위험, 사업 및 영업위험, 재무위험, 계열위험 등이 있다. 국가의 경우 정부부채, 재정적자, 성장률, 외채, 정치적 리스크 등을 종합적으로 보게 된다. 이렇게 평가해 신용이 좋으면 트리플A(AAA)에서부터 신용이 나쁘면 트리플 C(CCC)까지의 신용등급을 부여한다.
신용평가사가 신용등급을 매기는 국가나 기업과는 달리 개인의 신용등급은 각 금융사나 개인 전문 신용평가사인 크레디트 뷰로(CB)가 한다. 크레디트 뷰로는 개인신용정보회사로 금융사나 공공기관으로부터 개인의 신용 관련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축적·정제·가공해 이를 필요로 하는 금융회사 등에게 제공하는 일을 한다.
개인신용정보회사들은 개인들의 연체 금액ㆍ연체 기간ㆍ다중채무 여부ㆍ연체 반복횟수 등을 종합해 점수를 매긴다. 개인별로 부여되는 신용등급은 개인별 부실률(파산 확률)에 따라 1∼10등급으로 나뉜다. 1∼4등급은 우량, 5∼6등급은 일반, 7∼8등급은 주의, 9∼10등급은 위험등급으로 분류된다. 1~4등급은 연체가 거의 없으며 대출을 받더라도 단기간 이용하며 연체없이 일정 금액의 신용카드를 오랜기간동안 꾸준하게 사용한 사람이다. 5~6등급은 과거 연체경험이 있고 대출금액이 많은 편이며 이용기간이 중간 정도인 사람이다. 7~10등급은 현재 연체중이거나 연체 경험이 많고 신용거래 이용실적이 매우 저조한 사람이다. 금융회사는 이 신용등급과 개인의 소득ㆍ재산을 합산해 대출심사 등을 진행하는데, 7등급 이하일 경우 대출이나 신용카드 발급에 제한을 받게 된다.
국내의 대표적인 개인신용정보회사로는 코리아크레딧뷰로(KCB)와 나이스신용평가정보(NICE)가 있다. 이들 회사는 은행, 카드, 보험 등 금융사에서 제공한 금융거래정보와 공공기관, 통신회사 등이 제공하는 신용거래내역 등을 수집해 개인의 신용등급을 평가하게 된다. 하지만 평가방식이 조금 달라 같은 사람이라도 신용등급이 다소 다를 수 있다.
개인의 신용등급 책정에는 빚의 규모보다는 기일에 맞춰 상환했는가, 이자나 카드결제 납부액을 연체하지는 않았는가가 더 중요한 요소다. 신용등급을 올리기 위해선 무엇보다 연체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최근 국내 개인신용등급의 특징은 저신용층으로 추락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가 나빠지면서 살림살이가 팍팍해진 서민층이 급증한 탓이다. 한국은행은 KCB와 나이스평가정보가 임의로 추출한 50만명을 대상으로 금융위기 이전(2008년 6월)과 최근(2013년 6월) 개인신용등급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추적해 분석했다. 그 결과 2008년 6월말 중신용층(개인신용 5∼6등급)이었던 대출자 가운데 25.2%는 지난해 6월말 7등급 이하 저신용층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중신용층 대출자 4명 가운데 1명 이상이 신용불량자가 된 셈이다. 1∼4등급 고신용층도 7.2%가 저신용층이 됐다. 대략 138만명이 저신용층으로 추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20대 청년층이 저신용 늪에 빠지는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고금리 소액대출에 발목 잡히기 쉬운 데다 취업이 갈수록 어려워져서다. 20대의 경우 중·고신용 대출자의 27.9%가 금융위기 이후 7등급 이하 저신용자가 됐다. 이에 비해 30대(16.2%)와 40대(14.0%), 50대(11.9%) 등 대부분 연령층의 하락률은 10%대였다.
청년층의 신용등급이 나빠진 건 크게 두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선 20대는 무직자 비중(49.3%)이 가장 높다. 변변한 직장을 구하지 못하다 보니 한번 빚을 지기 시작하면 벗어나기 어렵다. 또 20대 가운데 소액 신용대출 이용이 많은 것도 원인이다.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 같은 비은행권에서 고금리 신용대출을 받은 경우가 많다. 이장연 한은 과장은 “저신용층으로 하락한 20대 가운데 무직이 50%에 육박한다”고 설명했다.
한번 저신용자로 떨어지면 악순환에 빠지기 십상이다. 은행 문턱을 넘기 어려우니 카드·캐피털·저축은행·대부업으로 발길을 돌리고 → 높은 금리의 돈이라도 쓰다보니 빚은 더 불어나며 → 빚 갚기가 어려우니 연체하고 → 결국 신용등급은 더 떨어지는 굴레에 빠진다. 저신용 늪에서 헤어나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저신용자의 빚을 정부가 갚아줄 수도 없는 일이다. 자칫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 현상이 만연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저신용자의 급증, 경제위기가 낳은 또하나의 우울한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