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에 무너진 실물경제
2011. 01. 07[이승훈 교수의 경제학 멘토링]
금융에 무너진 실물경제
사람들의 경제생활은 '재화와 용역을 취득하고 처분'하는 생활이다. 사람들은 의식주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취득해 소비해야 하고,기업들은 노동자들을 채용하고 기계 등 생산 설비를 설치한 다음 원자재를 확보해야 생산활동을 벌일 수 있다. 개인이나 기업이나 '재화와 용역을 취득'하지 않는 경제생활은 없다.
시장경제에서 '재화와 용역을 취득'하려면 반드시 그 대가를 지불해야한다. 상품 구입은 시장가격만큼의 대가를 지불해야 하고,임금을 지불해야 노동자를 채용하며,기계와 원자재도 돈 주고 사와야 한다. 시장에서 사는 대신 직접 생산으로 '재화와 용역을 취득'하더라도 필요한 자재와 노동의 투입이 불가피하다.
많은 경우에 대가의 지불은 '재화와 용역을 취득'하는 즉시 이루어진다. 그러나 외상거래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과거에 동네 상점과 음식점은 단골 고객에게 자주 외상거래를 허용하였다. 기업은 원자재나 부품의 대금을 현금이 아니라 몇 달 뒤 결제를 약속하는 약속어음으로 지불한다. 거래대금의 규모가 큰 선박이나 기계류는 물품 인도 이후 몇 차례에 걸친 분납 방식으로 대금을 지불한다. 신용카드 결제도 사는 사람의 처지에서 보면 외상 구입과 다를 바 없다.
동네 상점과 단골 고객 간 외상거래와 기업 간 어음거래는 순전히 당사자들 간의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선박 · 기계류와 신용카드 거래에는 중간에 은행이 개입하여 대신 값을 치러주고 나중에 사는 사람에게서 대금을 회수하는 것이다. 이 방식은 결국 은행이 사는 사람에게 물건 값만큼의 돈을 빌려주었다가 나중에 회수하는 금융과 다를 바 없다.
상환능력을 잃은 대출이 늘어나면 은행들은 쓰러지고 나라경제는 금융위기에 돌입한다. 은행권이 투자자금을 조달하지 못하고 외상거래를 지원하는 금융도 마비상태에 빠진다. 외상거래가 힘들게 되면 '재화와 용역을 취득'하는 경제생활도 그만큼 시들할 수밖에 없다. 투자뿐만 아니라 총수요 전반이 줄어들기 때문에 생산도 위축된다. 이처럼 금융의 붕괴는 경제 전반을 불황에 몰아넣는다.
최근의 경제위기는 부채담보부증권(CDO)등 첨단금융상품의 부실화에서 비롯했다. 첨단금융상품을 많이 개발하여 유통시킨 선진국 은행들일수록 타격이 컸고 많이 도산한 반면,금융산업이 낙후되어 첨단상품 도입이 늦은 동아시아 경제는 역설적으로 피해가 작았다.
그 결과 은행이 온전한 동아시아권 경제는 투자회복세를 이끌어 빠른 속도로 정상화되고 있지만 금융권이 크게 망가진 선진국 경제는 투자를 살리지 못한 채 아직도 위기의 언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승훈 <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