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샛공부방

공평성의 정치경제학

2009. 12. 03

[이승훈 교수의 경제학 멘토링]

공평성의 정치경제학
 
희소한 자원이 어느 몇 사람만의 전유물로 되는 것은 누가 보아도 부당하다. 자원배분은 효율적이면서도 공평해야 한다. 그러나 공평성은 결국 누가 좀 더 가지고 누가 좀 덜 가져야 한다는 논의로 귀결되기 때문에 효율성과 달리 만장일치의 합의에 이르기 어렵다.

얼핏 생각하면 희소한 자원을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나누는 균등배분이 공평하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커피 한 잔을 더 좋아하는 나와 사과 한 개를 더 좋아하는 너에게 똑같이 커피 반 잔과 사과 반 개를 강요하는 균등배분은 비효율적이다.

균등성의 원칙을 조금 완화하면 소득을 균일하게 나누는 것으로 바꿀 수 있다. 각자 똑같은 소득을 얻으면서 그 돈으로 자기가 사고 싶은 것을 사도록 허용한다. 이를테면 너의 커피 반 잔을 나의 사과 반 개와 바꿀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균일한 소득분배는 효율성을 보장한다는 면에서 균등배분보다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균일한 소득분배가 과연 공평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공평성의 기준을 '같은 사람은 같이 대우하고 다른 사람은 달리 대우한다(Equals should be treated equally,and unequals unequally)'로 정의했다.

예컨대 20대 독신 청년 철이와 일찍이 남편을 잃고 세 아이를 부양하는 40대 가장 김씨 아줌마의 소득을 똑같이 책정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초등학생인 세 아이를 부양해야 하는 김씨 아줌마의 소득이 철이보다는 더 많아야 하지만,초등학생인 아이를 어른과 어떻게 달리 대우해야 하는지가 문제다. 어른과 아이는 분명히 다르지만 이 다름을 어떻게 분배에 반영해야 할까. 유감스럽게도 다름을 달리 대우하는 기준에 합의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아이의 몫은 어른보다 적어야 한다는 데는 모두 동의하지만 몇 %여야 하는지를 객관적으로 정당화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공평성을 균일분배로 고집하면 모두 다 함께 더 좋아지는 협력이 불가능해지기도 한다. 각자 혼자 일할 때 철이는 10을 생산하고 영이는 16을 생산하지만 둘이 분업해 협력하면 합계 30을 생산한다고 하자.이 경우에 균일분배의 원칙을 적용하면 각자 15를 가지게 돼 영이의 몫은 단독 생산 때의 16보다 오히려 더 줄어든다. 이러한 분배를 찬성할 리 없는 영이는 분업 참여를 거부할 것이다. 분업을 하더라도 철이와 영이에게 각각 10과 16을 보장한 다음에 추가 생산물 4(=30-10-16)를 적절히 나누도록 분배 규칙을 정해 둬야 영이의 분업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후적 성과의 분배가 공평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분업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어렵다. 성과를 균등하게 나누는 방식보다는 모든 사람에게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하는 방식이 더 바람직한 공평성을 실현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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