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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경제 155> 기업사냥꾼과 삼성 그룹

2015. 06. 22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삼성 공격에 나선 美 헤지펀드

◆기업사냥꾼과 삼성 그룹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은 14일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와 삼성물산의 분쟁에 대해 “외국계 헤지펀드가 한국 자본시장에 와서 분탕질치는 것을 방치해선 안된다”며 “이번 건으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무산된다면 전 세계 벌처펀드가 한국을 공격할 것”이라고 말했다.

- 6월15일 한국경제신문


☞ 삼성그룹과 해외 헤지펀드 간에 ‘큰 싸움’이 붙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추진하고 있는 삼성그룹에 대해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삼성그룹은 왜 두 회사를 합병시키려 하고 있으며, 엘리엇은 왜 그리고 어떻게 삼성을 공격하고 있는 것일까?

지배구조 단순화위해 합병 추진하는 삼성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지난달 26일 각각 이사회를 열어 1 대 0.35의 비율로 합병키로 결정했다. 삼성물산 주식 1주에 대해 합병 후 새로 탄생하는 제일모직 주식 0.35주를 준다는 것이다. 합병을 위한 임시 주주총회(주총)는 7월17일 열기로 했다. 주총에서 합병 안건이 통과되면 두 회사는 9월1일자로 삼성물산이라는 이름으로 합쳐진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주식을, 제일모직은 삼성생명 주식을 많이 갖고 있다. 그래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쳐지면 그룹의 지배구조가 통합법인인 삼성물산이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거느리는 형태로 단순화된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와도 관련이 있다. 이게 삼성그룹이 두 회사의 합병을 추진하는 이유다.

몰래 주식 사들인 후 소송 제기한 엘리엇

미국 헤지펀드인 엘리엇(Elliott)매니지먼트는 삼성그룹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병키로 결정하기 이전에 삼성물산 주식을 4.95%(약 773만주) 사들였다. 엘리엇이 이처럼 삼성물산 주식을 많이 가진 것은 아무도 몰랐다. 법상 5% 미만의 지분을 취득할 때는 감독당국에 신고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자본시장법에는 5% 룰이란 게 있다. 상장사 지분을 5% 이상 취득할 경우 의무적으로 감독당국에 신고해야 하는 규정이다. 회사 경영진도 모르게 경영권을 탈취하려는 시도를 막아 경영권을 둘러싼 공정한 경쟁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다.

엘리엇은 이처럼 삼성물산 지분 5% 미만을 보유하면서 삼성을 공격할 기회를 보고 있다가 삼성그룹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병키로 결정하자 지난 3일 2.17%(약 340만주)의 삼성물산 지분을 추가로 사들여 지분율을 7.12%로 높였다. 엘리엇은 이로써 단번에 국민연금(9.79%), 삼성SDI(7.39%)에 이어 삼성물산의 3대 주주로 올라서게 됐다.

엘리엇은 지분 7.12% 보유 사실을 공개하면서 일성(一聲)으로 “제일모직의 삼성물산 합병 계획안은 삼성물산 가치를 상당히 과소평가했을 뿐 아니라 합병 조건 또한 공정하지 않아 삼성물산 주주의 이익에 반한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 합병비율을 문제 삼아 삼성그룹을 공격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엘리엇은 이어 지난 5일 국민연금 등 삼성물산 주요 주주들에게 서한을 보내 합병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불합리한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며 합병에 반대하라고 요구했다. 같은 날 엘리엇은 삼성물산에 현물배당을 할 수 있도록 정관개정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은 주주제안서도 발송했다. 삼성물산은 현재 삼성전자 지분 4.1%, 제일기획 지분 12.1%, 삼성SDS 지분 17.1%, 제일모직 지분 1.4% 등 14조원대의 계열사 주식을 갖고 있다. 이를 내놓으라는 요구인 것이다. 또 11일과 12일에는 법원에 삼성물산을 상대로 주주총회 결의금지와 자사주 처분금지 가처분소송을 제기했다.

엘리엇은 냉혹한 행동주의 헤지펀드

1977년 설립된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엘리엇어소시에이츠와 엘리엇인터내셔널 등 2개의 펀드를 운용 중이다. 전체 운용자산은 260억달러(약 29조원)에 달한다. 엘리엇을 이끄는 이는 최고경영자(CEO) 폴 싱어(71)다. 싱어는 스스로를 ‘지독한(tenacious) 헤지펀드 매니저’라고 소개한다. 약점이 있는 기업이나 국가를 물고 늘어져 이익을 챙기는 냉혹한 독수리라는 게 시장의 평가다. 그 과정에서 하버드 법학대학원에서 익힌 법률 지식을 최대한 활용한다.

싱어의 지독함은 부도난 국가의 채권을 헐값에 사들여 소송을 통해 거액을 보상받은 사례에서 잘 드러난다. 2011년 싱어는 내전으로 어지러웠던 콩고 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액면가에서 대폭 할인된 2000만달러에 사들였다. 이후 만기가 다가오자 콩고 정부에 보상을 요구했고 콩고 정부가 이를 거부하자 콩고 정부가 가진 국유재산 4억달러를 담보로 잡아버렸다. 결국 콩고 정부는 9000만달러를 물어줘야 했다. 2000년 페루, 2001년 아르헨티나 정부도 싱어에게 당했다. 싱어는 2009년 파산한 미국 자동차부품업체 델파이 채권도 헐값에 매입해 재미를 봤다. 이처럼 파산 위기에 처한 기업을 싼 값에 인수해 비싼 값으로 되팔아 단기간에 고수익을 올리는 펀드를 벌처펀드(vulture fund)라고 한다. 벌처(vulture)란 ‘대머리 독수리’로, 썩은 고기를 먹고 사는 독수리의 습성에 비유해 붙여진 이름이다.

‘기업사냥꾼’인 주주행동주의자

사람들이 주식에 투자하는 이유는 직접 경영에 참가하기보다는 주가가 올라 매매차익을 얻거나 배당을 받기 위해서다. 그런데 싱어처럼 투자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임원 선임이나 교체 등 기업의 지배구조나 경영에까지 간여하는 투자자를 주주행동주의자(activist shareholder)라고 한다. 기업사냥꾼으로 불리기도 한다.

국내 기업인 KT&G를 공격해 막대한 이익을 챙겨간 칼 아이칸은 애플을 상대로 자사주 매입 요구를 관철시켰다. 또 전자상거래업체인 이베이를 압박, 온라인 결제사업부문인 페이팔을 분사시키도록 했다. 빌 애크먼은 180억달러의 자금력을 앞세워 보톡스 제조업체인 엘러간의 적대적 M&A를 주도하고, 제약업체 화이자가 보유하고 있던 동물 제약사 조에티스의 사냥에 나서기도 했다. 대니얼 러브, 데이비드 에인혼, 커크 커코리언 등도 대표적인 주주행동주의자로 꼽힌다.

행동주의 투자자들은 글로벌 기업의 CEO들 사이에 공포의 대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09년 이후 S&P500 대기업 7개 중 한 개꼴로 행동주의 펀드로부터 경영진 교체나 경영전략 변화, 구조조정 실시 등의 요구를 받았다고 전했다.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

글로벌 헤지펀드가 국내 대기업 주식을 사들인 뒤 경영진을 압박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3년 영국계 자산운용사 소버린은 SK㈜ 지분 14.99%를 매집한 후 최태원 회장 퇴진 등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며 SK그룹을 압박했다. SK는 1조원이 넘는 비용을 투입해 경영권을 방어했다. 2005년 7월 소버린은 SK 주식을 전량 처분해 9000억원 이상의 차익을 거뒀다.

2006년엔 칼 아이칸이 국내 1위 담배기업인 KT&G를 공격했다. 아이칸은 다른 헤지펀드들과 연대해 KT&G 지분 6.59%를 매입한 뒤 자회사 매각 등 기업 가치 제고방안을 KT&G 측에 요구했다. 아이칸은 보유 지분을 전량 매각해 1500억원의 차익을 벌었다. 삼성물산은 2004년 영국계 헤르메스 펀드로부터 적대적 M&A 위협을 받았다. 헤르메스는 삼성물산 지분 5%를 사들인 뒤 우선주 소각 등을 요구하다가 같은 해 12월 하루 동안 전량을 매각해 300억원이 넘는 차익을 챙겼다.

전망과 교훈

삼성그룹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원안대로 9월1일자로 합병한다는 방침이다. 합병비율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불리하다는 엘리엇의 주장에 대해선 “법 규정에 따른 것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현행 자본시장법은 상장사끼리의 합병비율은 합병결의 직전 최근 1개월 평균 주가(종가 기준), 1주일 평균 종가, 합병 결의 전일 종가를 산술 평균해 산정하도록 하고 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비율 1 대 0.35는 이 기준을 따른 것이다.

삼성과 엘리엇 간 싸움은 임시 주총에서 표 대결로 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누가 우호지분을 더 많이 확보할 것인가가 관건이 된다. 주총에서 합병안건이 통과하려면 의결권 있는 주식의 3분의 1 이상이 참석하고, 참석주주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엘리엇의 이번 공격을 계기로 국내 기업들에도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좀 더 다양한 수단을 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유럽이나 미국 등은 1주만 가져도 주요 경영안건의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황금주, 1주가 여러 의결권을 행사하는 차등의결권주 등을 허용하고 있다. 기업 경영진이 경영권 위협 걱정에서 벗어나 본연의 경영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이런 경영권 보호장치가 허용되고 있지 않다. 그래서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땅 짚고 헤엄치는 형국으로 ‘먹튀’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있는 셈이다. 또 국내 기업들의 경영도 보다 치밀해져야 한다. 기업사냥꾼의 먹잇감이 될 수 있는 빌미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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