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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경제 112>드라기 ECB 총재의 실험

2014. 08. 04

 

드라기 ECB 총재의 실험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의 사상 초유의 실험 - 디플레 탈출 위해 마이너스 금리카드를 꺼내들다>---------------

 

ECB마이너스 금리

유럽중앙은행(ECB)5(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정례 금융통화정책회의를 열고 마이너스 예금금리를 도입키로 했다. ECB는 시중은행이 ECB에 맡기는 자금에 대한 금리를 현행 제로(0)에서 마이너스 0.1%로 낮추고 11일부터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ECB는 또 경기 부양을 위해 연 0.25%인 기준금리를 0.15%0.1%포인트 인하했다. - 66일 한국경제신문

 

# 시중은행들이 돈을 안풀고 중앙은행에 맡기면 손해

유럽 합중국의 통화신용정책을 총괄하는 유럽중앙은행(ECB)이 경기 부양을 위해 사상 초유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마이너스 금리가 그것이다. 디플레이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오랫동안 경기침체와 싸우고 있는 미국 중앙은행(Fed)나 일본 중앙은행(BOJ)에서도 쓴 적 없는 극약 처방이다.

은행의 은행인 중앙은행은 가계나 기업 등 개별 경제주체들과 거래하진 않는다. 정부나 금융회사가 거래대상이다. 그래서 마이너스 예금금리도 가계가 기업이 넣는 예금에 대한 이자가 아니다. 시중 은행들이 중앙은행에 맡긴 돈에 대한 이자다. 시중 은행들은 개별 경제주체들로부터 받은 예금 중 일부를 중앙은행에 예치한다. 이 예치금에는 예금주들이 돌려달라고 요구할 때에 대비해 법에 정해진대로 의무적으로 중앙은행에 쌓아둬야 하는 법정 지불준비금(지준금), 이 법정 지준금보다 더 많은 돈을 예치하는 초과 지준금이 포함된다. 중앙은행은 이렇게 쌓아둔 시중은행들의 돈에 대해 일정한 이자를 지급한다. 법정 지준금을 어느 수준으로 할지와 예치금에 대해 어느 정도의 이자를 줄지는 경기 동향, 금융사의 경영 실태 등을 보고 중앙은행이 정한다.

예를 들어 요즘처럼 경기가 좋지 않아 부양책이 필요하다고 하자. 그러면 중앙은행은 지준금을 적게 쌓도록 해 시중 은행들이 대출을 많이 해줄 수 있도록 한다. 가령 중앙은행이 지급준비율(은행이 고객으로부터 받아들인 예금 중 중앙은행에 의무적으로 적립해야 하는 비율)10%로 정했다면 A은행이 100억원의 예금을 받아들일 경우 최소한 100억원의 10%10억원을 지준금으로 중앙은행에 쌓아야 한다. 그러면 A은행은 최대 90억원을 대출해줄 수 있다. 그런데 중앙은행이 지준율을 5%로 낮춘다면 이 은행이 중앙은행에 예치해야 하는 지준금은 5억원으로 줄게 되는 반면 대출 가능총액은 95억원으로 늘게 된다. 지준금을 적게 쌓게 할수록, 다시 말해 지준율을 낮출수록 시중 통화가 늘어나 경기를 부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시중 은행의 예치금에 주는 이자는 적을수록 은행들이 더 많은 대출을 하게 하는 유인이 된다. 가령 중앙은행이 시중은행 예치금에 주는 이자를 낮추면 돈을 맡기려는 은행이 줄어 시중유동성은 늘게 된다. 시중은행은 잉여 자금을 중앙은행에 맡겨놓기 보다는 기업과 가계에 더 많이 공급해 시장 유동성은 결과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물론 중앙은행이 시중은행들에 주는 이자는 일반적으로 시중 금리보다는 낮다. 그런데도 시중은행들이 적극적으로 자금을 운용하지 않고 중앙은행에 돈을 맡겨놓는 것은 자금을 운용할 만한 곳이 마땅치 않거나 경기가 극도로 부진할 경우 나타난다.

반면 중앙은행이 시중은행 예치금에 대해 높은 이자를 주면 경기엔 마이너스이지만 시중은행들의 재무 건전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Fed2009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국채나 모기지증권 등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35000억달러에 달하는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했다. 그런데 이렇게 풀린 돈 중 26000억달러는 초과 지준금 형태로 다시 중앙은행에 예치됐다. 버냉키 당시 Fed 의장은 이 예치금에 대해 비교적 많은 이자를 줬다. 버냉키가 이렇게 풀린 자금이 실물 부문에 모두 쓰이는 걸 기대했기보다는 금융사의 건전성을 높이고 국채 금리를 안정시키는 걸 더 중요하게 여겼다는 의미다.

 

# ECB의 세가지 카드

ECB가 이번에 내놓은 경기부양책은 크게 세가지다. 첫째, 기준금리를 0.25%에서 0.15%로 인하하고 시중은행들의 중앙은행 예치금(초과 지준금)에 대해 -0.1%의 금리를 부과한다. 둘째,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중앙은행 대출 프로그램(LTRO)을 가동해 최대 4000억유로(550조원) 대출을 제공한다. 셋째, SMP(Securities Markets Programme)라고 하는 기존 국채 매입의 불태화 정책을 포기한다. 불태화 포기는 재정난을 겪는 회원국을 지원하기 위해 국채를 사들이면서 물가를 자극하지 않도록 시행했던 시중 유동성 환수조치를 그만둔다는 뜻이다. 이를 통해 풀릴 자금은 1625억유로로 추정된다.

ECB가 시중은행들의 초과 지준금에 대해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키로 한 것은 경기부양을 위한 특단의 조치로 볼 수 있다. 이제 유로존 은행들은 법정 지준금을 초과해 중앙은행에 쌓는 돈에 대해선 이자를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중앙은행에 맡긴 돈에 대한 보관수수료를 내야 한다. 자금을 적극적으로 운용하지 않는 데 대한 일종의 벌칙인 셈이다. 시중은행들에 여유 자금을 기업과 가계에 더 많이 공급하라는 뜻이다.

ECB는 이와 함께 통화신용정책의 주요 수단인 기준금리를 연 0.25%0.15%0.1%포인트 낮췄다. 201171.5%였던 기준금리는 지난해 11월까지 0.25%포인트씩 계속 낮아져 0.50%까지 떨어졌고 결국 0.15%까지 추락한 것이다. 이번 결정으로 기준금리는 역대 최저 수준으로 낮아졌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낮추면 시중의 금리도 낮아진다. 이렇게 돈을 빌리는 비용이 줄어들면 소비나 투자가 늘어날 유인이 생긴다.

금리가 낮아져 시중에 유로화 자금이 많아지고 더 높은 이자를 좇아 외화 자금이 유로존 밖으로 빠져나가면 유로화 가치가 하락하는 효과도 있다. 그러면 유로존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이 높아져 수출도 늘어날 수 있다.

ECB의 기준금리 인하 소식이 전해지자 세계 증시는 일제히 강세를 보였다. 독일 DAX지수는 이날 장중 사상 처음 1만선을 돌파했으며 뉴욕 증시도 상승세를 보였다. 금리와 주가는 대체로 반대로 움직인다. 금리가 낮아지면 주가는 오르고, 반대로 금리가 오르면 주가는 내리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금리가 높으면 투자 위험(리스크)이 적지 않은 주식 대신에 확정 이자를 주는 예금이나 채권으로 시중 자금이 몰리기 때문이다.

ECB는 또 시중은행들이 가계와 기업에 적극적으로 대출해줄 수 있도록 실탄을 공급하기 위해 저금리 장기대출(LTRO)도 해주기로 했다. LTRO9월과 12월 두 차례 더 실시되는 등 2018년까지 실시되며 첫 규모는 4000억 유로(556조원). LTRO(Long Term Refinancing Operation)는 유럽 은행들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ECB는 유럽의 재정위기가 한창이던 2011년말과 2012년초 LTRO 정책을 실시한 바 있다. 

마리오 드라기 총재는 이어 지난 5일 기자회견에서 물가상승률이 낮은 상태로 지속될 경우 추가로 비전통적 조치를 고려할 수 있다는 데 ECB 정책 결정자들이 만장일치로 동의했다고 밝혔다. 필요하다면 중앙은행이 시중의 자산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돈을 푸는 미국식 양적완화에 나설 수 있다는 뜻을 시사한 것이다. 양적완화(QE) 정책은 버냉키 전 Fed 총재가 경기부양을 위해 썼던 초강력 경기부양책으로 중앙은행이 시중에 무한정 자금을 풀어 경기를 살리려는 비()전통적 통화신용정책이다.

# 기대효과는?

드라기 총재가 초유의 카드를 꺼내든 이유는 유로존 경기 회복세의 둔화다. 유로화를 사용하는 18개국(유로존)5월 물가상승률은 0.5%200911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5월까지 8개월 연속 0%대에 머물면서 ECB의 목표치인 2%를 한참 밑돌고 있다. 물가가 낮은 것은 평상시라면 환영받을 만한 일이지만 극도의 경기침체에 따른 것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낮은 물가는 성장이 장기적으로 정체되고 실업률은 치솟는 디플레의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 1분기 유로존 회원국의 성장률은 0.2% 그쳤다.

ECB가 이번 정책으로 기대하는 효과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유로화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 확대와 물가 상승을 유도하는 것. 둘째, 잉여자금이 많은 독일 은행들이 남유럽 기업들에게 돈을 빌려주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금융전문매체인 마켓워치는 ECB의 이번 결정이 그 범위 면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고, 경제 전반에 걸쳐 엄청난 파급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적지않은 전문가들의 시각은 낙관적이지 않다. 기업이나 가계의 대출 수요가 부족할 뿐더러 은행들이 비용 부담을 소비자들에게 떠넘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 시중은행들이 중앙은행에 맡겨둔 예치금도 많지 않다. 독일이 수출 주도 경제 모델을 고수하는 가운데 많은 경상수지 흑자 규모를 유지하고 있어 유로화 가치가 계속 오를 가능성도 여전히 크다. 비판론자들은 금리가 떨어지고, 주가지수가 오르는 것은 이른바 착시 효과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시장의 초기 반응은 상당했지만, 이후 열기는 사그라졌다며 이는 ECB 정책에 대한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신문은 유럽 은행들이 그동안 대출을 꺼렸던 것은 자본비율 강화 등 대차대조표를 개선하는 데 집중해왔기 때문이라며 은행들의 자본 개선 조치가 끝날 때까지는 민간으로의 자본 이전은 제한될 것으로 내다봤다. 또 많은 유로존 국가가 지나친 관료주의와 낭비성 공공투자 등으로 현재 경쟁력을 잃고 경제는 경직됐으며, 이 때문에 기업들이 투자를 꺼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전했다. 미국의 경제 격주간지 포천은 ECB의 이번 결정이 잘못된 방향으로 바주카포를 발사하는 것과 흡사하다며 유럽 내 좀비은행문제 해결에 좀 더 진지하게 접근해 은행권 대출 기능을 정상화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 한국에 대한 영향은?

제로 금리는 한때 중앙은행들 사이에서는 금기어에 가까웠다. 초저금리 상태가 오래 가면 경제 주체들의 심리가 꺾여 소비와 투자가 줄어드는 악순환에 빠지기 때문이다. 이른바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이다. 2000년대 초반 주요국 중앙은행 중 처음으로 제로 금리를 도입했던 일본은행은 1년 만에 기준금리를 다시 올렸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제로 금리는 대세가 되다시피 했다. 중앙은행들이 돈을 무제한 뿌려도 물가가 오르지 않는 상황이 계속된 결과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예전의 경제위기와는 다른 이른바 중심부의 위기. 그래서 그 파급력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다. 불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양적완화 정책은 통화전쟁을 야기했다. Fed의 달러 약세 유도와 일본 아베노믹스의 엔화 약세 정책은 그동안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로 진행됐다. 최근엔 중국 정부도 위안화 변동폭 확대를 빌미로 자국통화 약세를 이끌면서 선진국들의 통화전쟁 대열에 몸을 실었다.

선진국들의 통화완화 정책은 한국으로서는 원화 절상(원화가치 상승)을 의미한다. 세계적인 통화전쟁속에서 원화가치 상승률은 올들어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현대경제연구원 홍준표 연구위원은 원화 절상이 수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관광수지 적자 폭을 확대시켜 내수 경기에도 부담을 줄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 경제는 1분기에 작년보다 3.9% 성장하면서 지난 3년의 침체에서 벗어나는 조짐을 보였다. 하지만 부동산 임대소득 과세를 둘러싼 혼선과 세월호 참사로 경제 심리가 위축돼 그나마 살아나던 부동산과 소비가 다시 힘을 잃고 있다. 또 국내 물가는 올들어 1%대에 머물러 있다. 한국은행의 목표치(2.53.5%)를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기업의 투자 부진 역시 유럽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각종 규제때문에 차라리 외국에 공장을 짓는 곳도 상당수다. 정부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내놨지만 손에 잡히는 건 거의 없다. 세기의 실험을 시도하는 ECB의 결정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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